작성일 : 14-08-19 15:49
전 지구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기독교 적 핍박과 복음의 확산
 글쓴이 : 목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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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세기 십자군 전쟁을 그린 그림. 십자군과 반월도를 든 오스만투르크 군.
종교는 항상 정치적으로 다른 종교와 충돌, 갈등 하는 가운데 권력을 소유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형태로 인간의 삶 속에서 계속되어 왔다. 아마도 이러한 종교 간 갈등이 역사 가운데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때는 바로 중세의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일 것이다. BBC도 지난 12일 ’정말로 매년 10만명의 기독교인 순교자가 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이 기독교인 순교자의 죽음 뒤에는 무슬림들이 있다는 악성루머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면서,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와 파워를 가지고 있으므로 사실상 가장 많은 수가 핍박을 당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유명 언론사의 국제 부분 탑기사에는 다른 종교로부터 적대적 공격을 받은 기독교에 대한 기사가 종종 자리를 차지해오고 있고 언론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어찌되었든 역사를 증인 삼아 가장 오래 동안 많은 순교자를 내면서도 핍박을 이기고 지금까지도 확산되고 있는 복음은 과연 이러한 종교간의 충돌과 갈등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는 반기독교적 핍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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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ew Research Center
지난 2010년부터 2011에 발발한 ‘아랍의 봄’으로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세계 리더들은 중동-북아프리카의 종교적 신념과 관행들에 대한 제한들이 더 줄어들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주민들에 대한 자유(?)도 더욱 확장되는 정치적 성장이 일어날 것을 기대한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비종교기구인 the Pew Research Center의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미 높았던 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종교제한수위는 혁명 이후에 오히려 계속 더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2010년 이전에도 중동-북아프리카지역의 정부 정책에 의한 종교제한과 종교로 인한 사회적 적대감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높았다. 그런데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운동’이 온 아랍을 휩쓸며 소위 ‘민주화’ 정권들 새롭게 속속 들어섰음에도, 2007년에는 4.7 이던 이 지역 종교제한지수는 2010년 이후 오히려 5.9로 높아졌고 종교와 관련된 사회적 적대감 지수 역시 3.7에서 5.4 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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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ew Research Center
그런데 수치상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러한 권력에 의한 종교제한 현상은 비단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북미권과 유럽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종교제한지수 및 종교로 인한 사회적 적대 현상 지수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만큼 높지는 않지만 2007년 이후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및 태평양 연안지역의 종교로 인한 사회적 적대현상은 대충 변동 폭이 적었지만 정부 정책에 의한 제한은 선명하게 증가했다. 또 미국의 경우에는 정부의 제한과 사회적 적대 현상 모두가 증가했다. 놀라운 것은 매우 높은 지수로 종교를 제한하는 국가의 비율 역시 2007년 29%에서 2011년 40%로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중에서 기독교가 가장 많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기구인 오픈도어선교회가 발표한 2012년 자료에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에서 핍박 당하고 있는 종교 1위는 역시 기독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오픈도어선교회에서 매년 발표하는 기독교핍박지수순위 ‘World Watch List 2013′에 따르면 1위 북한, 2위 아프가니스탄, 3위 사우디아라비아, 4위 소말리아, 5위 이란, 6위 몰디브, 7위 우즈베키스탄, 8위 예멘, 9위 이라크, 10위 파키스탄이다. 11위부터 20위의 나라는 에리트리아, 라오스, 나이지리아, 모리타니아, 이집트, 수단, 부탄, 투르크메니스탄, 베트남, 체첸으로 대부분 이슬람권,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을 향한 물리적 공격과 테러들은 9.11 전후로 더욱 들려오고 있다. 지난 2008년 8월 인도에서 제일 가난한 오리사 지역에서 힌두교도들이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방화를 일으켜 120명 이상의 사망하고 600개 이상의 교회처소가 파괴되었으며 2천명 이상이 방화로 집을 잃고 난민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까지도 시리아와 이라크, 파키스탄 그리고 이집트 교회를 향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테러와 학살로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남아있던 전통적 교회들 중 극 소수마저 잔멸할 위기에 놓이면서 작금의 세계교회를 향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이슬람권역은 국가 종교가 이슬람으로서, 대부분의 이슬람국가에서 소수종교인 기독교는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가지 제한과 갈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믿음을 지키는 문제로 종교 중에서는 기독교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의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인 고든 콘월 신학교(Gordon Conwell Univ.) 부속 Gordon Conwell Theological Seminary의 연구결과 <Status of Global Mission, 2013, in the Context of AD 1800–2025>에 따르면 믿음을 지키는 문제로 인해 기독교에서 연간 10만 명의 순교자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로마카톨릭, 정교회, 개신교 및 독립교단, 성공회(Roman Catholics, Orthodox, Protestants and Independents, Anglicans)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00년대에 2천5백명이던 기독교 순교자 수는 이후 2000년까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향후 2025년 이후에는 매년 15만명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2천년 간 약 7천만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이 순교자 수 중 절반 이상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던 20세기 들어 나온 것이며 특별히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테러리즘의 확산과 함께 매년 약 1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하였다고 분석했다.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세계복음화 비율
세계 주요 종교의 증가율 도표 ⓒ Joshuaproject_2010
세계 주요 종교의 증가율 도표 ⓒ Joshuaproject_2010
이와 같이 기독교를 대상으로 한 전 지구적 핍박과 제한,  그리고 순교자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반면 세계 복음화 비율은 1800년대 26%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71%로 200년 사이에 40% 이상이 증가했다. 또한 여호수아프로젝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0년대 종교별 성장율은 불교 1.30%, 모든 종류의 기독교와 힌두교가 1.20%, 이슬람 1.90%, 복음주의 2.60% 로 기독교가 가장 높으며 그 중에서도 복음주의가 가장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독교핍박지역의 복음주의 성장속도가 인구증가 속도 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현재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민족의 수도 1989년 1만 1천 종족에서 2004년 6천 종족으로 급격히 줄었다. 이것은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민족이 복음을 전해듣게 되는 속도가 지난 근 2천여년간 1만 1천 종족이 복음화된 것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많은 민족 가운데 복음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이와같이 복음화율이 높은 지역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핍박도 가장 높은 지역이며 다수종교 및 국가 종교가 이슬람이 대부분인 중동-아프리카 지역이거나 기독교 이외의 종교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들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모든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더 늘어나겠지만 복음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어져 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가 권력화되는 그 순간 확산의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전 지구적 시간의 흐름 앞에 복음을 가진 우리 기독교인들이 앞으로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미 역사 앞에 자명히 밝혀져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박지연 기자